시사IN 7호 (2007년 11/6) 꼬리표
2008/09/01 15:35 | 컵에 따르다 | Permanent link

시사IN은 3주에 한 번 꼴로 본다. 주로 외박 나갈 때 기차안에서 읽는 용도로 산다. 예전 7호 때부터 그렇게 쭉 사왔는데 나름 쌓여 책장에 들어갈 틈이 없어졌다. 안 보고 있는 다른 책들 사이로 억지로 쑤셔넣고 있다. 주간지야 계속해서 쌓이는 것인데, 다시 보지도 않을 주간지를 꽂아 놓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버릴 수도 없다. 왠지 나중에 쓸모가 있을 것 같은 느낌도 있고, 그냥 버리면 글을 소비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어차피 시사IN에 있는 기사들은 다 웹상에 있을거고, 기사를 찾는 것도 웹상에서 검색하는 게 더 빠를 것이니 굳이 가지고 있을 필요도 없다. 그래서 마음 먹은 게 버리긴 버리되, 버리기 전에 괜찮았던 글들을 따로 (스크랩하긴 귀찮고), 웹페이지로부터 링크를 걸어, 쉽게 찾을 수 있게 하고 간단한 코멘트를 달기로 했다. 여기다가.

처음 샀던 회부터 차례대로 그냥 잊혀지기 아까운 기사 및 칼럼들을 옮겨 놓을 것이다. 정말 괜찮은 기사도 있고, 조금 아쉽지만 생각할 거리를 주는 기사도 있을 것이다.



시사IN 7호 - 2007년 11월 6일자


'노벨상 이론'으로 고약한 네티즌 착하게 만든다 - 김국현(IT 칼럼니스트)

주요 내용은 웹 상에서 (악플을 다는 등의)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네티즌을 행동 궤적의 중앙 집중 관리를 통해 인센티브와 페널티를 주면서 '착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하기 위해 다소 거창하게 '내시 균형', '메커니즘 디자인'등의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이론들을 끌어들인다. '내시 균형'은 이 기사만 봐서는 ESS를 말하는 것 같은데, 온라인 상의 행적에 인센티브와 페널티를 주는 것을 설명하려는 것이 목적이라면 굳이 어려운 이 이론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 들긴 하였다. 본인도 글을 쓰다 곤욕스러웠는지, 마지막은 "온라인은 ... 시장 결함 그 자체를 보완하는 메커니즘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는 말로 얼버무린 듯하다. 그래도 "온라인에서 악플러들이 횡행하는 것은 굳이 착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마음에 들어 꼬리표를 단다. 굳이 착할 필요가 없다면 착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진화론의 핵심이며, 제도를 진보시키고 싶으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사실이다.



아우 먼저, 형은 나중, 형제는 불운했다. - 신호철 기자

소말리아 해적에 의해 일어난 동원호가 피랍은 117일만에 풀려났다. 그 이후 또다시 한국인 선원이 탄 마부노 호가 소말리아에서 납치 되었는데, 그 중 한 명은 동생이 동원호에서 납치가 되었던 터라 안타까움을 더했다. 형제가 번갈아가며 같은 지역에서 같은 해적에게 같은 방식으로 피랍이 되었다.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 또한 같았는데, 지금은 결국 풀려났지만 샘물교회 아프간 피랍사건에 묻혀 관심조차 받지 못했던 상황에서 일부 언론들이 조명을 받게 하려고 노력한 것은 다행이다. 지역사회의 모금운동과 샘물교회가 3000만원 기부했다는 사실도 무사히 풀려났기에 더더욱 고맙게 느껴진다.
 


영화를 죽여놓고 쇼를 해라, 쇼를 해 - 신기주 (프리미어 기자)

부산 국제 영화제의 상업성을 비판하는 기사다. "영화제의 규모가 커지면 영화제는 안과 밖으로 나뉜다."고 한다. 영화제 밖은 관객들과 미디어가 있는 곳이고 영화제 안은 감독, 프로듀서, 제작자, 후원자, 일부 기자들의 사교의 장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영화제는 물주들의 홍보의 장으로 바뀌게 되고, 영화제는 영화보다는 돈과 광고의 축제가 된다. 2007년 국제 영화제는 나도 관람하였지만 해운대에 설치되어 있는 그 수많은 광고 건물들은 정말 영화와는 아무 상관 없는 없느니만 못한 것이었다. 칸 영화제와 비교하면서, 영화제 규모에 따른 불가피성을 말하면서도, 영화제가 아닌 영화쇼가 되어버린 부산 국제 영화제를 비판한다. 올해 부산 국제 영화제도 얼마남지 않은 시점에서 지켜봐야할 내용이다.



대선 공약, 숫자의 마술을 읽어라 - 윤해동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제 식민 시절 경제 고도 성장의 기틀이 마련되었다는 것인데, 이는 당시 이명박 캠프의 담론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정치, 사회, 문화적 요소를 분석 대상에서 배제한 채, 경제성장만을 입증하고자 하는 것이"고, 이명박 정부 또한 "정치, 사회 문제를 경제 성장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경제 성장 슬로건을 내걸었다. 이때만해도 한나라당은 야당이었는데, 당시 한나라당의 '여의도연구소' 이사장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창한 서울대 명예교수가 영입되었다. 이 글의 필자는 그 두가지 이론이 궤를 같이 하는 '경제지상주의'를 예리하게 집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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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1 15:35 2008/09/0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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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하나하나에 심리가 회전하는 스포츠, 야구
2008/08/31 22:56 | 컵에 따르다 | Permanent link

위기 뒤에 찬스가 오고, 찬스를 살리지 못하면 위기가 온다는 것은 어느 스포츠에서나 정설이다.
공격에 집중하고 있다가 실패했을 때 순간적으로 집중력이 흐트려지기 마련이다. 그 틈을 타서 공격을 펼치면 찬스로 이어질 때가 많다.

야구도 마찬가지지만 조금 특별하다. 야구는 공수교대를 하기 전에 쉬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이유로 찬스 뒤 위기를 맞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훨씬 복잡하게 심리적 영향을 미치는 스포츠가 야구이다. 

이전 수비에서 호수비를 하고 다음 공격 이닝에서 처음 타자로 나온다면 희안하게 안타가 잘 난다. 통계적인 자료는 없어서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내가 본 야구 게임에서는 대체적으로 그랬다. 해설가들도 한 목소리로 호수비가 다음 타석에서 좋은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야구는 '부담의 스포츠'라고 어색하게 이름 붙이고 싶다. 부담을 얼마나 더느냐가 실력 발휘에서 중요하다. 그 이전 이닝에서 좋은 수비로 안타 하나를 막았다면, 부담을 덜고 다음 타석에서 자기 스윙을 할 수 있다. 만약 실책을 했다면 그 반대로 작용할 것이다. 어느 스포츠나 앞서 실수를 했으면 다음 플레이에 영향을 미치지만, 야구처럼 정신적인 요소가 많은 스포츠에서는 그 영향이 더 크다.

야구는 부담의 스포츠이다. 1점차와 2점차, 3점차가 투수에게 주는 부담의 차이는 상당하다. 다른 스포츠, 예를 들어 축구에서도 1:0 과 2:0, 2:1, 3:0 점수에 따라 부담의 정도가 다른 건 당연하지만, 야구는 특별하다. 1점차는 3루에 주자만 두면 희생플라이나, 투수 폭투로도 동점을 만들 수 있지만, 2점은 안타 하나가 더 필요하다. 수비 입장에서 2점차는 주자 하나를 내보내도 홈런이 있기에 불안하지만, 3점은 주자 한명 정도는 괜찮다. 단순히 골을 넣으면 득점을 하는 일반적인 스포츠와 달리 득점 방법이 다양해서 1점의 차이가 큰 것이다.  

그 뿐인가, 1볼, 2볼, 1스트라이크 3볼, 2스트라이크 3볼, 볼 카운트에 따라 부담의 정도가 다 틀리고 또 만루냐 1루가 비어 있느냐 채워져있느냐에 따라서 부담의 정도는 달라진다. 그 부담감을 극복하고 원하는 곳에 공을 던져야 한다.

또 신기한 건 실책이 나면 희안하게 점수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실책으로 1루에 진루하면 불안하기 그지 없는데, 그 불안은 현실이 될 때가 많다. 그냥 볼넷으로 나가거나 안타로 나가는 것과는 느낌이 다르다. 이는 투수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상상만 해도 힘이 빠진다. 실책 이후에 주자가 계속 불어난다면, 자꾸만 실책 생각이 떠오르고 더 흔들릴 것이다. 실책 한두개만으로도 다 이긴 게임을 놓칠 수 있다.

야구는 분위기를 유달리 많이 탄다. 그 이유는 투수의 존재라는 다른 스포츠와의 차이다. 농구, 축구, 핸드볼, 배구 등은 공격하는 팀이 공을 가지며, 수비는 그들의 공격을 방어한다. 농구, 핸드볼, 배구는 상대편에게 점수를 먹어도 바로 자신에게 공격권이 돌아오며, 그 때 침착하게 하면 된다. 축구는 아무리 분위기를 뺐겼더라도 골만 안 먹히면 아무 문제 없다. 심리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 쪽은 수비쪽 보다는 공격쪽이다. 수비는 사람을 쫓아다니거나 공을 지켜보는 것이지만 공격은 공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스포츠는 분위기가 넘어가더라도 수비에 다시 집중할 수 있으며, 정 안 되서 먹혀도 (축구는 치명적이지만 축구를 제외하면) 자신에게 다시 공격권이 넘어오고 분위기 반전을 꾀할 수 있다. 슬램덩크에서 '디펜스', '디펜스'를 외치는 것은 수비 성공으로 흔들린 마음을 다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구는 투수가 있다. 투수의 공에서 모든 플레이가 시작된다. 그런데 투수는 심리적인 존재이다. 야구는 수비하는 쪽이 공을 가지고 투수가 일종의 공격을 하는 것이다. 공을 다루는 쪽은 심리적인 영향을 더 많이 받고, 흔들리기 시작하면 제구가 안 되고 제구가 안 되면 끝이 없다. 숨을 돌릴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코치가 올라간다던가, 투수를 교체한다던가 하는 다른 방법으로 분위기를 끊으려 한다. 공을 다루는 쪽이 수비라는 것이 야구가 유달리 분위기를 많이 타게 만든다.

야구는 다른 스포츠처럼 시간제도 아니고, 점수제도 아니고, 공격이닝제이다. 만약 야구가 시간제나 점수제였다면 분위기를 한번 잡은 쪽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다. 그랬다면 분위기를 타는 야구는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점수차이가 많이 난다고 하더라도 9회 이전 까지는 언제라도 분위기를 잡을 기회가 온다. 분위기를 타는 특징과 이닝제는 절묘한 궁합으로 야구만의 특별한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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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31 22:56 2008/08/31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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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23일
2008/08/23 20:03 | 두 손에 담다 | Permanent link

나는 소외감을 느낄 때 더 혼자 있으려 한다.
있지도 않은 의지를 첨부해 내가 혼자 있고 싶어서 혼자인 거라고 나를 속이기 위한 목적이다.
내가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오늘 내일 안에 생길 것 같진 않다.
어떤 무리에 끼는 건(누군가가 나를 찾고 끼어 주는 건) 내게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가장 큰 원인은 내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내 주위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커녕 무리들 속에 끼어주지도 않는다. 그 집단의 평균적인 즐거움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평균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하기에는 나는 너무 진지하고 심각하다.

어제도 소외감을 느낄 일이 있었고, 원래 계획되어 있던 것이었지만 더 철저히 오늘 하루는 혼자 보냈다.
일어나 간단하게 방청소를 하고, 바로 시내로 나갔다.
만날 대구에 놀 거 없다, 볼 거 없다고 말만 하고 실제로 볼거리를 찾아보지도 않았던 것 같아서 자그마한 곳이라도 들러보기로 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 갔고, 그사람을 처음 만났던 중구청 앞을 갔고, 대구 중앙 도서관을 갔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생각보다 넓었다. 코스프레축제가 하고 있었는데, 그들만의 축제였다. 그래도 그렇게 많은 만화 캐릭터들이 뛰쳐 나온 건 처음이라 볼만했다.
그사람을 만났던 중구청 앞은 그냥 아무것도 없이 쓸쓸했다.
대구 중앙 도서관에서는 대출 카드를 만들었다. 내가 최초의 군인인 것 같았다. 군인이 가입할 수 있는 규정은 있지도 않았는데, 그냥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동성아트홀에서 '존레넌 컨피덴셜'을 봤다. 원제는 'US vs John Lennon'이다. 존레넌의 정치적인 활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인데, 이 글을 읽는 분은 꼭 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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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3 20:03 2008/08/23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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