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이미지에 대해 물었다

Posted 2009/06/29 23:12, Filed under: 쓸 데 없는 글

썩더라도 내 뱃 속에서 썩어라고 구은 계란을 밀어 넣는다


친구가 소통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뭐냐고 물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 어색한 순간만큼은 최소한 소통이 되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소통이란 뭘까.

같은 매질에 있는 것? 같은 매질에 있어서 서로 통할 수 있는 것?

내가 뱉은 공기를 남이 들이마시는 것?

보이지 않는 실을 잡고 손가락 장난을 하는 것?

내 속옷 서랍을 열어 보여주는 것?

서로를 의식하지 않고 바라보다 서로를 의식하게 되는 그 짧은 순간?


아무 말이나 씨부리기로 했다.

그러다 하나 낚시줄에 걸리는 것을 소통이라고 믿고.


말 없이 천리를 함께 걸어가는 과정이 소통인 것 같기도 하다.

발 없는 말은 천리를 갈 수 없지만 말 없는 발은 그럴 수 있다.

속담은 잘못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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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9 23:12 2009/06/29 23:12




구름의 각질들이 땅에 내린다
가장 가장자리에 자리한 각질들부터 떨어져내린다
가벼워진 구름은 때를 벗겨낸 마음으로 목욕재계한다

잘 갖추어진 하수도 시설로 굴러 떨어져간 구름의 세포들은
영문만 모른 채 땅의 그림자 밑에서 시냇물 소리로 흘러간다

가장 뒤늦게 떨어져 나온 각질들은 대기 중에 기화하여
기괴한 냄새가 되고
땀이 되고
땀냄새가 된다

그 냄새는 다시 액체가 되고
물이 되고
구름 비슷한 것이 된다

장마는 만남이다
아주 오랜 만남
부비고 부벼서 격렬하게 각질들은 떨어져 나온다

잠이 오지만
잠이 들지 않는 밤에
잠을 들었다 놨다 괴롭힌다

옛날 집의 모기 핏자국이라도
그리워해야 미쳐버리지 않을
밤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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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9 22:35 2009/06/29 22:35




'테드 창'이라는 소설가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하드 SF라는 장르가 있는지도 몰랐다. SF를 좋아하지만, 태양계의 곳곳에 도시를 세우고, 우주를 여행하고, 시간 여행도 하는 그런 식상한 고전 SF에 질려있긴 했었다. 사실 그런 SF들은 고전이긴 했지만, 어쨌든 걸작선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던 800페이지짜리 SF 소설집을 읽은 뒤 물려있었다.

어쨌든 일을 하며, 테드 창이라는 소설가를 알게 되었고, 책을 사서 읽어야 했다. 일하고 있는 영화제의 초대손님에 대한 예의랄까.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하드 SF라는 바로 내가 원하던 그런 SF소설을 읽고 싶었다. 물리학과 출신이라는 점도 허무맹랑한 은하계 이야기를 풀어내진 않을 것이라 믿을 수 있게 하였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책인데, 총 8편의 중,단편을 묶었다. 지금 앞의 두 소설을 읽었고, 세번째 소설을 읽고 있는 중이다. 말 한마디 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테드 창이 오기 전에 그의 소설의 리뷰를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편안한 마음으로. 스포일 왕창 넣어서. 퇴고도 하지 않고.

그 책의 첫번째 소설은 "바빌론의 탑"이다. 바빌론의 탑을 쌓아 올리다 신이 노하셔 무너뜨렸다는 성경의 내용을 차용한다.

1. 문학적 성실성
테드 창의 소설이 여느 SF와 다른 점은 기발한 상상력 더하기 문학적 성실성이 있다는 것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은 그렇게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문학으로서의 평가는 듣지 못했다. 테드 창은 화려한 수상 경력이 말해주듯, SF라는 장르를 떠나 문학적으로 가치있는 소설을 쓴다. 섬세한 표현과, 세세한 묘사, SF의 화려하지만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천천히 호흡을 늘어뜨리며 읽어가는 서사를 '바빌론의 탑'에서 읽을 수 있다. 문학적으로도 성실한 작품이기에 굳이 SF라는 장르를 붙일 필요가 없다. 실제로도 SF라 하기에 애매한 소설이다.

2. '바빌론의 탑'이 SF라고 하기에 애매한 이유
바빌론의 탑의 배경은 옛날이다. 옛날이야기를 워낙에 지루해하는 나의 개인적인 성격 때문에 이 소설도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았다. 테드 창이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 처음의 시작 포인트는 아마 이것이었을 것이다. "만약 실제로 그 옛날에 바빌론의 탑을 실제로 무지막지한 높이로 쌓아올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러한 궁금증에서 출발한 상상력이 아마 이 소설을 쓰게 만들었을 것이다. 소설 내내 이어지는 고도에 따른 묘사는 매우 사실적이다. 실제로 그 시대에 그 정도의 높이로 쌓아올리는 것은 불가능했겠지만, 만약 쌓아 올릴 수 있었다면 그가 묘사한 바와 매우 흡사했을 것이다. 검증된 지식에 기반을 두고 묘사했기에 '하드 SF"의 '하드함'을 느낄 수 있다. 현재의 과학적 지식은 과거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의 상상력이 된다.  그는 결말 맺기에 고심했을 수 있다. 결말 맺기가 애매한 발상 때문에 그는 어쩔 수 없이 고리형 우주관(혹은 뫼비우스의 띠 우주관)을 택하게 된다. 고리형 우주관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모순을 고리로 묶어버린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기 전 사람들은 땅의 끝을 궁금해했다. 땅의 끝엔 무엇이 있을까 끝없이 행진하다가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게 됨으로써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았다. '바빌론의 탑'은 하늘의 끝엔 무엇이 있을지 호기심을 느끼던 인간에게 결국 다시 땅 밑으로 돌아온다는 교묘하면서도 '진리일지 모르는' 세계관을 채택한다. 그러나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늘의 끝이 땅과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우주의 끝엔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하는 인간의 호기심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어쨌든 소설의 결말은 그 시대의 상상력이다. 그래서 이 소설이 그 옛날 바빌론의 탑을 쌓을 시절에 나왔다면 정말 감탄할만한 SF(그 당시에 없었을지라도)였겠지만, 지금 시대에 이 결말은 조금 허무하다. 고리형의 우주는 자신을 드러냄으로서 자신을 숨긴다. 바빌론의 탑을 무너뜨려버리고, 인간이 서로 소통할 수 없도록 언어를 만들었다는 성경의 내용처럼, 소설 속의 바빌론의 탑도 결국 신의 나라에 닿지 못하고, 고리에 갇혀 버린다. 진리의 은폐성의 미학을 충실히 표현하고 있지만, 어쨌든 이것이 SF냐 아니냐 하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서는 애매하다.

3. 상상력의 아름다움
바빌론의 탑을 올라가는 여정의 묘사는 정말 성실하면서도 아름답다. 물론 조금의 과장은 있지만, 그 과장은 수사학적 아름다움으로 메운다. 소설에서의 이 문장이 떠나질 않는다.
"밤이란 대지 자체가 하늘을 향해 드리우는 그림자였다."
바빌론의 탑에 대한 상상이 없었다면 이러한 아름다운 '사실'을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진행중인 테드 창 강연 초대 이벤트

1.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테드 창이 온다. 공개 강연 하나(환상교실)에, 팬미팅 하나, 그리고 비공개 워크숍이 있다. 강연(환상교실)과 팬미팅은 7월 18일 부천 경기예고 경기아트홀에서 열린다. 강연은 유료인데, 이벤트에 참여하면 무료로 테드 창을 만날 수 있다. 부천시 고등학생만 참여할 수 있지만 중학생이 신청해도 상관 없다. 어차피 지원하는 사람이 적어 다 될 듯하다. 이 글을 참고해서 써도 상관없다.
궁금하다면 여기를 클릭

2. 알라딘에서도 이벤트가 진행중이다. 댓글만 달아도 되지만 운빨이다.

3. 그냥 돈 내고 들어도 된다. 영화제의 다른 영화표과 같은 가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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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1 22:13 2009/06/21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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