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눈이 내려도 한바탕 빛이 나리고 나면 거짓말처럼 하수를 따라 흐른다
그리고 언제나 녹지 못한 눈은 남는다.
음지 그리고 사람의 발이 닿지 않는다면.

따라 녹지 못하고 덩어리져 남아버린 섬 같은 눈들을 본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에 어렸을 때부터 여러 정의를 내렸다.
지금도 어리지만 그 때보다는 더 현실에 가까운 정의를 내릴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기 우화를 하나씩 깨가며 자신과 세상에 대한 환상을 녹이는 것.

녹아가는 과정에서 범벅이 되어 지저분해진다. 아름다웠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보도블럭이 드러날 때까지 회의가 지속된다.
무엇이 무엇인지, 나는 무엇인지, 나는 대체 뭘하는 것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런 시기가 몇번씩 찾아온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인지 하는 문제는 철학적인 문제가 아니다. 지극히 세속적이지만 총체적인 회의를 가져오는 걱정이다. 정말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거울을 보고 놀라듯이 놀란다.
아무것도 몰랐고 지금도 모른다. 지금은 다른 사람이 하는 모든 것이 의미없어보이고 의미없이 살아가는 것 같다. 그건 다 허상이 만들어 낸 삶의 부조리라고 말해주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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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2 01:10 2010/03/12 01:10

송광사에서

습자지 | 2010/02/22 01:47 | 이방인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달이 밝네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
겨울에는 흰 눈

부질없는 일로 가슴 졸이지 않으면
인간의 좋은 시절
바로 그것이니라


-순천 송광사 '이 달의 선시', 무문선사 시 중-




::::::::::::::::::::::::::::::::::::::::::::::::::::::::::::::::::::::::::::::::::::::::



얼음 위의 돌
사람소리 아랑곳 않고
묵언수행하다
봄이 오면
열반에 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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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2 01:47 2010/02/22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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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위를 달리다

A4 이면지 | 2010/02/19 14:42 | 이방인

영사기 속 필름은 시간을 탐색하고
기차 창 밖 풍경은 공간을 탐색한다
공간을 탐색하는 필름 

-2009.8. 인도



부산 지하철 2호선이 서면역 근처를 달릴 때 창 밖으로는 영상광고가 나온다.
달리는 차창밖으로 영상광고를 내보낸다는 게 산뜻했는데, 원리를 생각하려니 만만치 않다.
정지된 영상이 필름처럼 깔려있고, 그 위를 전철이 달림으로써 영상처럼 보이게 하는 방법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만약 실제로 그렇다면 열차 칸마다 보이는 영상의 시점이 달라진다.
영화가 필름을 돌려 영상을 만든다면, 이것은 반대로 필름은 가만있고 주시자가 필름 위를 달려 영상을 만드는 꼴이다. 필름 위를 달리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광고였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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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9 14:42 2010/02/19 1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