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을 파는 사람
Posted 2007/03/04 02:19, Filed under: 컵에 따르다그 종이에는 자신의 비참한 상황과 함께, 조금만 도와주십쇼하는 당부의 말이 있다.
다시 종이를 거둬가면서, 그는 도와주는 사람으로부터 돈을 받아간다. 지하철을 자주 탄 사람이라면 한두번 또는 그 이상 만나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오늘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 지하철 안에서 다시 누군가가 종이를 나눠주었다.
종이의 내용은 판에 박힌 듯하지만, 결코 거짓말을 지어내서 하는 것 같진 않다.
병든 홀부모를 모시고 있으며, 몇 세, 몇 세 아들 딸을 둔 가장이지만, 장애인이라 취직도 안 되고,
정부 보조금을 받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는 말, 염치 불구하고 도움을 청한다는 말.
간단히 적었지만 실제로는 보다 구체적인 상황을 적어 놓았다.
양심상 보통 볼펜이라도 파는데 그냥 종이만 나눠주는 건 공짜로 먹으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거저 돈을 먹으려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자존심을 팔아 그 삯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리가 종이와 함께 돈을 주는 것은 그들의 자존심을 사는 것이다.
설사 볼펜을 팔더라도 그 볼펜은 상품이 아니라 그들의 자존심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언제나 현재의 시스템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며,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마치 사명감처럼 느낀다. 장애인이 된 뒤로 지하철에서 저렇게 눈도 못 마주치며 종이를 나눠주어야 하게끔 만든 사회, 그리고 그 자가 앞을 지나갈 땐 무관심으로 일관하다 다른 칸으로 건너갈 땐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는 사람들. 그리고 아무런 도움도 해결책도 제시할 수 없는 나. 그렇게 나 혼자 낙담하고 사명감에 잠겨 있곤 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런데 나는 돈을 꺼내지 않았다. 이전에도 그랬다. 천원짜리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종이를 도로 가져가는 것을 기다리기만 했다. 그들이 자존심을 사주길 간절히 바란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가치있는 종이 한장을 포개서 함께 돌려주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온갖 자기 합리화를 시작한다.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남들이 도와줄 것이라는 생각. 연민으로 도와주는 것이 결코 그 사람을 도우는 것이 아닐꺼라는 생각. 종이 속의 내용이 거짓일 수 있다는 생각. 생각보다 많은 돈을 벌 것이라는 생각. 정직하게 돈을 벌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았을 꺼라는 생각. 그 돈으로 술을 사먹을 것이라는 생각. 자존감은 더 추락할 것이라는 생각. 근본적인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그러나 그건 합리화일 뿐이다.
물론 그들이 하루에 얼마를 버는지 모른다. 저번에 TV를 보니 그 일을 하는 사람들 중 어떤이는 한달에 150 정도는 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실제로 절룩발이가 아닌데도, 일할 시간이면 절룩거리는 연기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를 벌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그 사람들은 자신의 자존심을 판다. 그 자존심은 아무리 밑바닥 인생이라도 천원보단 비쌀 것이다. 그것을 결정하기까지 매 순간순간 자신을 깍아내렸을 것이다. 그 사람들이 파는 자존심을 단 돈 천원에라도 사주지 않는다면 그 자존심은 물건처럼 다른 사람에게 팔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버려진다.
그 사람의 행동과 종이 속 상황이 거짓이라 해도 상관없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결코 넉넉한 삶을 살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눈으로 확실하게 장애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어디에서 무얼 하든, 집안의 가장이든 아니든, 지하철로 내몰은 상황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일 것이다.
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결국은 그 사람을 더 의존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도우는 것이 아닐 꺼라고 생각하는 것도 명백한 합리화이다. 만약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그 사람은 일 할 의지를 가지고, 일자릴 찾으러 돌아다니며, 결국엔 찾을 수 있을까. 너무나 이상적으로 보는 게 아닐까. 아니, 그 사람이 정말로 삶의 의지도 없고, 평생 빌어먹으며 살려고 하는 쫌팽이라고 하자. 그럼 그 사람은 그렇기 때문에 죽어도 될까, 죽어야 할까.
어차피 근본적인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 사람의 호주머니 속에 천원이 더 들어가나 안 들어가나의 차이일 뿐. 천원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은 사실 아무렇지도 않게 느낄 것이다. 워낙 많이 당하는 일이니. 천원을 준다고 해서 그 사람 하루 살림이 편해져봐야 얼마나 편해지겠는가.
어쩌면, 돈을 건네 주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는 사람을 위해서일 수도 있다. 자신의 도덕적 만족감을 위해서, 훗날 나처럼 죄책감을 피하기 위해, 뿌듯함을 위해. 천원이면 충분하기 때문에, 오천원이나 만원을 주는 상황은 분위기를 더 어색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기대치는 1인당 천원이다. 천원으로 그 정도의 도덕적 만족감을 산다면 그 또한 괜찮은 거래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쨌든 나는 왜 주지 않았는가. 무슨 이유로 주지 못했는가. 내가 생각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매우 사소하다. 지갑에서 꺼내야 했기 때문이다. 만약 겉 옷 주머니 안에 천원짜리가 있었다면 줬을 수도 있다. 지갑에서 천원짜리를 꺼내는 동안 주위 사람의 시선, 그리고 그 시선을 느끼는 내 자신이 느끼는 묘한 도덕적 우월감과 쑥스러움이, 그리고 건네줘야 한다는 긴장감이 내 손을 얼어 붙게 만들었다. 호주머니에 천원짜리가 있었다면,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는 척하며 살짝 쥐어줬을 것이다. 이전에 볼펜을 파는 사람에게는 그랬었다.
정말 소심하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소심하다. 이것이야 말로 진짜 자기 합리화이고 변명인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렇다. 그 사소한 차이가 나의 행동을 결정한다. 아니 얼굴까지 포함한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자리에서 선뜻 나서기가 힘든 것은 일반적인 심리이기도 한다. 이런 일반적인 심리 때문에, 간단하고, 익명성도 보장되고, 자신이 도운 걸 화면으로 확인하여 도덕적 만족감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사랑의 리퀘스트와 같은 ARS모금이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는지도 모른다.
그 자리에서 휴대폰으로 ARS를 눌러 그 사람에게 직접 도와 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기꺼이 했을 것이다. 호주머니에 천원이 있었다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참으며 재빨리 줬을 수도 있다.
연민과, 도덕적 의무감, 그리고 도덕적 우월감에 따른 수치심. 언제나 나를 짓누른다.
돌아오는 길에 또 비슷한 사람이 종이를 돌렸다. 앞섰던 일이 너무나 후회스러웠기에, 이번에는 지갑에서 꺼내서라도 주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주지 못했다.
이유는 천원짜리가 다 쓰고 수중에 없어서였다.
어쩔 수 없었다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나는 다시 합리화를 하며 시스템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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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일도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
Tracked from 여기는 melotopia, 나는 snowall 2008/01/02 21:19 Delete자신이 가진 것을 힘들게 사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사람은 나눔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알기 때문에 그 즐거운 일을 하면서 자신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가끔, 어쩌면 모든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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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사람들을 보면 자주 돈을 주는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대학교에 들어가게 된 이후로 그렇지 못하고 있는 현재입니다.
대학이라는 곳에 가게 되니, 이런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에 대해
정말 여러가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버스정류장 앞에서 열대여섯살 정도로 보이는 남학생이 소년가장이라면서
껌을 팔고 있었습니다. 저는 주저없이 그냥 1000원정도를 주면서 그 껌을 받았지만
그 광경을 본 제 친구는 그런 저를 이해할 수 없었는지 자기의 논리를 펼쳤습니다.
그 논리는 한마디로 우리가 그들에게 돈을 쥐여주기에 정부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않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이 전적으로 맞다는 건 아니지만, 대학들어가고 지갑이 얇아지기 시작한 저에게는 솔깃한 말이었고 그럴싸한 말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초코우유부단님처럼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위안을 삼았지만, 결국 마음을 참으로 불편하더군요.
이제부터라도 조금 더 그들에 대해 생각해봐야 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D-
네. 그들에게 돈을 쥐어주기에 정부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 다는 말..
맞는 말이지만, 그것의 '이'를 생각해보면, 그들에게 돈을 쥐어주지 않는다고 해서 정부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는 것도 아니죠.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건 근본적인 원인을 고쳐야 할 텐데, 그게 그렇게 쉬울 것 같진 않네요. 같이 더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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