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쓴 '섹스의 진화'에서는 인간의 성생활이 다른 종들과 비교해 매우 독특하다고 강조한다. 배란기를 따지지 않고 수시로 하는 섹스들, 남의 눈을 피해서 사랑을 나누는 것, 남자가 자녀의 양육에 관여하는 것 등등 우리가 별다른 생각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성생활 양식들이 사실은 인간으로의 분화과정에서 특화된 것이라고 말한다.

책의 첫 장(章)의 첫 장(張)은 개가 우리와 같은 두뇌를 가지고 있고 우리의 성생활에 대해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지를 가정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거기서 개는 임신할 수 없는 기간(배란일과 거리가 먼 기간, 폐경기 이후 기간, 임신기간 등)에 성관계를 가지는 인간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폐경이라는 것을 겪지 않고, 임신이 가능한 기간에만 교미를 하는 다른 동물로써는 인간의 행동들이 정력 낭비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첫 장의 첫 장을 읽는 순간 책에 대한 기대는 저버렸다. 저자는 정말 개들이 새끼를 낳기 위해 교미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쾌락을 위해서 섹스를 할 것이다. 인간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포유류들은 배란기에 독특한 특징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비비의 경우 배란기가 되면 암컷의 성기 주변의 피부가 부풀어 오르고 선홍색으로 변한다. 그러나 그 현상 때문에 다른 동물들은 쾌락 대신 번식이 섹스의 목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들은 그 때 성욕을 강하게 느끼는 것이다. 성기 주변의 피부가 부풀어 오른 것을 봤을 때 참을 수 없는 욕망을 느낀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그런 배란의 특징이 드러나지 않으며 그 이유에서인지 어느 때고 성욕을 느끼게 진화되었다. 그런데 만약 인간과 매우 비슷하지만 암컷이 배란 주기에 따라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가 인간의 남성처럼 없어졌다가를 반복하는 종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종의 수컷은 배란 주기 근처에서 훨씬 큰 성욕을 느낄 것이다. 어쩌면 가슴이 부풀어 오른 암컷만을 따라다닐지도 모른다. 앞서 나머지는 인간과 같다고 가정하였다. 그 종의 수컷은 앞서 저자가 설명한 것처럼 생식을 위해서 섹스를 하는 것인가. 아니다. 그 때도 목적은 쾌락이다. 다만 다른 종의 경우 특정한 기간에만 관계를 맺는 것은 '인간처럼 시도 때도 없이 (심지어 혼자서도) 성관계를 가질만큼' 다른 생리학적, 생태학적 조건이 따라주지 않아서이다. (이제 막 왜 인간은 시기를 가리지 않고 성관계를 갖는지에 관한 장을 보기 시작했다. 다양한 예와 근거를 들어 납득할만한 이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도 동물도 섹스의 목적은 생식이다. 그리고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은 쾌락이다. 그건 조류도, 양서류도, 심지어 체외수정을 하는 어류까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본능적인 욕망이 없다면 도대체 왜 그 행동을 하겠는가. 체외 수정을 하는 어류를 보면 그들이 알을 낳고 정자를 뿌리는데 쾌락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냥 그들은 몸이 하라는 데로 따라만 갈 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인간에게는 '자아'를 들이밀어 욕망 충족을 위해 섹스를 한다고 하면서, 다른 생물들은 프로그램 되어있기 때문에 프로그램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다른 동물들이 어떤 느낌으로 생식을 하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욕망을 충족하려는 것 또한 프로그램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일 뿐이고, 역으로 생각하면 다른 동물 또한 그러한 욕망이 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모성애나 일부 종의 부성애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은 귀여운 자기 자식을 보살피고 싶은 욕구가 있고, 그것이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유전자의 보존을 위한 프로그램 된 것과 같은 행동이다.
저자는 현상으로 들어나는 것(목적 달성을 위한 행동)과 그 내면의 기작(주관적 감정)에 관해 동물과 인간에 다른 잣대를 들이대었다.

욕구 달성을 위한 '동기'라는 것이 정확히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는 어려운 문제이다. 단순히 컴퓨터 프로그램 속의 명령에 의한 행동과 주관적 감정이 개입된 행동의 차이점은 사실 불분명하다. 의외로 욕망을 프로그램 하기 쉬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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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7 12:44 2007/11/17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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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智熏 2007/12/12 10:34

    인간이라는 종족은 아주아주아주 먼 옛날부터 생식 목적과 쾌락 목적의 섹스를 구분해왔다죠~ 대강 유인원 정도 때부터였다고 들은 것 같음. 하지만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쾌락 목적의 섹스에도 결국엔 진화적 목적이 숨어있을 거라고 봐~

    • 잡상인(雜想人) 2007/12/13 18:29

      생식 목적과 쾌락 목적을 구분해왔다는 것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섹스를 하면 아기가 생긴다는 것을 알았다는 건지, 아니면 그때부터 생리 날짜를 계산해 애기를 일부러 낳지 않는 섹스를 했다는 건지?
      그리고 어떻게 분화가 되었다는 건지 말해줄래? 아기를 낳는 건지도 모르고 기분좋아서 섹스만 하다가 구분할 수 있게 된 것인지, 아니면 애기를 낳으려고 섹스를 하다가 쾌락을 분리해 낼 수 있었다는 것인지.

  2. 智熏 2007/12/15 17:39

    어디서 읽어서 기억에 한조각 남은거라서 글쎄 과정 상의 디테일한 설명은 하기 어렵고.

    생식목적과 쾌락목적의 분리라는 말은. 즉, 성판매 등의 행위가 아주아주 먼 옛날부터 있었다는 말과 상통하지. 성판매는 생식 목적이 아니잖아? 결국엔 남성 지배 구조에서 나온 남자들의 얄팍한 욕심 수단이 있었다는 거지.

    사실 동물들도 자위를 하는 마당에 무슨 당연한 얘기냐 하는 말이 아니지. 자위란 일단 내가 아는 한 포유류는 대개들 다 하고 있지만, 우린 배우자는 물론 non배우자와의 생식 목적에서 벗어난 행위가 존재해왔다는 말, 결국엔 내가 읽은 문맥으로 말하자면, 그 행위를 경제적 물물로 여길 수 있었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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