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어난 외모에 절대적 기준이 있느냐 없느냐는 민감한 이슈이다. 교훈적인 결론은 사회마다 시대마다 고평가받는 외모의 기준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런 주장에는 예를 들어 조선시대에는 지금처럼 서구적인 외모가 아니라 눈이 가늘게 찢어지고 펑퍼짐한 코가 매력적이었다거나, 양귀비는 굉장히 뚱뚱했다거나 하는 근거들이 따라온다. 또한 목에 쇠링을 많이 달거나 아랫 입술을 찢어질 정도로 늘리는 장신구를 다는 여성들이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소수부족들을 예로 들 수도 있겠다.

나는 그런 근거들에 대해 만족할 수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외모에 대한 기준은 단지 학습된 것일 뿐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럼 나는 전혀 다르게 학습될 수도 있었다는 말인가.

학습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서구중심적(백인 중심적)'인 가치가 '미디어'를 통해 양산되었을 뿐이라고 한다. 여성의 경우, 작은 얼굴, 크고 쌍꺼풀이 있는 눈, 높은 코, 갸름한 턱선 등이 '서구중심적인 외모 기준'일 것이다. 서구에 대한 선망이 미디어를 통해 표출되고, 문화적으로 학습된 남자들은 서구적 기준으로 생긴 여자들을 좋아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냥 수긍하기에는 근거가 약하다. 진화심리학 교양서적을 한 두 권 뒤져봤지만, 교양서적이라 그런지 외모에 너무나 조심스럽게 접근하였다. 좌우대칭이라든지, 깨끗한 피부 등 신체의 건강을 표시하는 외모의 특징들을 들며 그런 사람들을 좋아하게 진화되었다는 내용이 주로 있다. 파란 눈, 큰 가슴, 금발 등에 대한 내용도 있었지만, 읽고 나서는 정말 남자들은 보편적으로 파란 눈과 금발의 여자를 좋아하는지 더 헷갈리기만 했다.

한국의 여자 연예인들로 대표되는 서구적인 외모에 대한 매력은 정말 학습된 것일까.

이에 반하는 실험 중 하나는 어린아이들도 예쁜 보조교사를 좋아한다는 일련의 TV 실험이다. 물론 실험에서 '예쁜' 여자는 한국남자들이 보편적으로 예쁘다고 생각할만한 '서구적인 외모'의 소유자였다.

정말 '서구적인 외모'에 대한 선호는 학습되는 것인지 확인하려면 다른 변인들을 통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 후광효과를 배제해야 한다. 예를 들어 김태희가 서울대 다닌다는 사실을 알면 더 예뻐보이고, 비싼 차에서 비싼 옷을 입은 남자가 내리면 같은 외모의 볼품없는 옷을 입은 남자보다 더 멋있어 보이는 효과이다. 앞서 든 예 중 목이나 아랫입술에 장신구를 크게 단 사람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 또한 외모 자체가 아니라, 장신구에 의한 후광효과이다. 옥시덴탈리즘이 서구적인 외모를 매력적이로 보이게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바로 후광효과를 얘기하는 것이다. 즉, 물질적으로 선망의 대상이 된 서구의 사람들이, 외모 자체 때문이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의 우월성 때문에 외모마저 예쁘고 멋있게 보인다는 것이다. 개화 지식인들은 서양인의 신체를 흠모했었고, 서양의 강력함과 우월함을 닮기 위해서는 단련을 통해 서양인과 비슷한 신체와 체력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망의 대상을 닮고 싶은 욕구가 외모에 투영된 것이 '서구(백인)적 외모'의 선호일 수 있다.

둘째,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선호하는 성향을 제거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백인과의 혼혈인이 인기가 많다. 자신과 너무 이질적이지 않으면서 서구적인 외모를 가졌기 때문이다. 큰 눈과 높은 코는 그대로 가지면서 한국적이면 한국적일수록 선호도는 더 높아질 것이다.

셋째, 좋아하는 이성의 선택에서 중요한 요소인 '현실적 한계'이다. 미디어를 통해 서구적 외모 선호가 학습되었지만 결국 좋아하게 되는 사람이나 사귀게 되는 사람은 반드시 그 조건을 만족하는 사람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좋아하는 사람의 선택에는 접근 가능성, 자신이 받는 사회적 평가, 성격적 특성, 타인의 자신에 대한 호감 등 다양한 요소가 포함된다. 다른 모든 조건이 같을 때, 나는 김태희를 선택할 것인가, 평범한 외모의 여자를 선택할 것인가.

넷째, 개인성향의 차이와, 문화권 간의 차이를 구분해야 한다.

위 네가지 변인은 모두 통제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대조군으로 선택할 사람의 기준이 모호하다. 비서구적인 외모는 너무나 다양하다. 비서구적인 외모의 특징들을 세세하게 분류한 뒤, 각각을 비교하는 것만 가능할 것 같다. 그리고 아무리 학습이 덜 된 어린아이를 동원한다 하더라도, 익숙한 사람을 선택하는 둘째 변인의 효과는 측정도 통제도 어렵다.

외모에 (상대적 기준과 더불어) 보편적 기준이 있는지 없는지, 백인의 외모 특징들이 정말로 우월한가 아닌가는 위험한 호기심일 수 있다. 외모적으로 우월하다고 해도 "So What?"인 문제이지만, 잘못 왜곡되어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외모에 가해지는 지독할 정도의 압박은 분명 비정상적이다. 거품돈이 성형외과에 몰려들고, 외모에 대한 수치심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는 자꾸만 그 현상들이 황소개구리가 우월성을 바탕으로 생태계를 파괴하는 모습과 겹쳐진다. 위험한 생각일까. 외모에 대한 선호가 문화적으로 학습된 것임이 불완전하게나마라도 증명되기 전까지는 계속 그 위험한 생각을 떨치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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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6 20:40 2010/01/2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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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h 2010/01/28 23:36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미인에 대한 기준이 nature, nurture 중에 뭐에 더 우세하게 영향을 받는지 묻는건가.
    난 학습설을 주장하는 건 과학적이지 않다고 생각해. 문화를 통한 학습이란 말은 너무나 막연해서, 그럴싸하긴 하지만 검증하기가 무척 어렵지 않을깡? 그래서 학습설의 주장에 대한 근거는 오로지 "이건 본능에 의한 것이 아니다"를 보여주는 것으로만 가능하지 않을까 해.

    1 != 2 를 본능적으로 아는 건지, 학습받는건지 생후 얼마 안된 아가들한테 실험한 결과도 있다던데, (본능임을 지지하는 결과가 나옴) 왠지 여러 형태의 미인에 대한 아가들의 뇌파 실험도 있을 것 같음.

    • 이방인 2010/01/30 15:41

      어렴풋이 기억나는 바로는 아가를 상대로 한 실험에서 성인의 기준으로 미인인 사람의 사진을 보여줬을 때 아가들도 좋아하는 반응을 보였다고는 한 것 같던데, 그게 모든 나라의 아가들을 상대로 행해진 실험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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