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교보문고에 가서 상상한 것이, 이 많은 책들을 누군가가 통째로 사서(혹은 교보에서 동째로 기증을 하여), 도서관으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시민으로써 접근 가능한 도서관 중에 대형서점보다 책이 많은 곳은 없는 것 같다.
이어서 든 생각이 만약 여기에 있는 책을 모두 읽게 된다면, 그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그야말로 초지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정화(結晶化)되어 있는 지식들을 모두 습득한 사람.
단, 그 사람이 책에서 읽은 내용을 모두 완벽히 기억하고 인출할 수 있는 초지능을 가진 것은 아니라고 가정한다. 대부분은 잊어버리고, 기억이 왜곡되기도 하고, 관심없는 분야는 지루해서 집중이 잘 안 되기도 하는 일반적인 사람이 무한한 시간을 얻어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문은 평소에 우리가 책을 읽을 때처럼 몇 번 다시 읽어보다가 넘어가는 것으로 한다.
무한히 주어진 시간, 대형 서점에 있는 책들을 모두 읽을 수 있게 된 누군가는, 혹은 나는, 학문에 대한 어떤 통찰을 얻을 것이며, 가치가 대립하는 분야에 대해서 어떤 가치를 정립하게 될까.
샤르트르의 소설 '구토'에는 도서관에 꽂혀 있는 책들을 A부터 알파벳 순으로 읽어가는 독학자가 나온다. 그가 그 방대한 작업을 마무리했을 때는 가치가 충돌하는 문제들에 대한 답을 정립할 수 있게 될까.
책을 읽는 순서에도 영향을 받을 것이고, 특정 가치를 주장하는 책의 권수에도 영향을 받을 것이고, 개인이 처한 위치, 평소의 가치들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평소 가지고 있던 선입견과 고정관념의 대부분이 해소되거나, 최소한 완화될 수는 있을 것이다. 각 분야의 쟁점들이 무엇이고, 핵심이 되는 내용이 무엇인지, 왜 같은 문제를 다른게 보는지에 대한 통찰력은 확실하게 생길 것 같다.
이런 가상을 가정해 보는 이유는, 비가역적인 개인의 가치(혹은 사상) 변화에 대한 것을 알고 싶기 때문이다. 즉, 모든 책을 처음부터 하나씩 읽기 시작한 사람이, 책을 읽기 전에는 A를 주장하다가, 책을 읽는 동안 B로 생각이 바뀌더라도, 책을 다 읽을 때까지 B에서 다시 A로 생각이 바뀌지는 않는 비가역적인 생각의 고정이 발생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그리고 만약 세상의 모든 사람 각자가 세상의 모든 책을 읽는다면, 그 이후 가치의 분포는 어떻게 달라지게 될까.
내가 특정 가치를 더 중시여기는 이유는 거기에 관한 정보에 단순히 많이 노출되었기 때문인지(반드시 책이 아니더라도, 주위 환경에 의한 영향 혹은 개인의 특정한 경험 때문인지), 아니면 사람마다 선천적인 성향이 있는 것인지를 알고 싶다.
만약 가치판단에 대한 선천적인 성향이라는 것이 있다면, 아마 모든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자신의 성향을 찾게 될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생각할까, 이것이 나중에 바뀌게 될까, 바뀌지 않게 고정되는 가치도 있을까 하는 물음.
유한한 시간만 주어지고, 유한한 지식만 선택해서 습득해야 하는 제한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선택하는 것이 무한한 지식이라는 이상적인 상황에 가까울 수 있을까하는 물음과 이어진다.
책보다 더 영향을 많이 미치는 건 개인의 경험일텐데,
그렇다면 지금까지 지구에서 살았던 모든 인류의 삶을 한 명 씩 다 살아볼 수 있다면 어떤 가치의 편에 서게 될 것인지에 대한 물음도 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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